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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의 고민 속에서 만난 조정래 《한강》,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오른 이유 스물한 살, 대학생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는 《아리랑》을 읽었고, 고3 봄에는 《태백산맥》을 읽었습니다. 두 작품은 제 학창 시절을 통과하며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그리고 성인이 된 뒤, 자연스럽게 조정래의 또 다른 대하소설 《한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강》은 제가 스물한 살이었던 대학생 시절 출간된 작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책 내용만큼이나 당시 제 마음 상태가 먼저 생각납니다. 대학생이 된 저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지나왔지만, 막상 성인이 되고 나니 세상은 훨씬 넓고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제 손에 들어온 책이 바로 《한강》이었습니다.스물한 살의 고민 .. 2026. 6. 30.
'검사내전', 검사는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직장인이었다 드라마보다 더 현실적인 검사 이야기, 『검사내전』검사라고 하면 보통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거대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를 떠올리게 되잖아요. 그런데 김웅의 『검사내전』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이미지와는 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법률 지식이나 어려운 사건 이야기가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예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검사가 겪는 고민과 고충, 그리고 사건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에세이에 가까웠습니다. 딱딱한 법률 용어나 전문적인 설명이 쏟아졌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자는 특유의 위트 있는 문체로 검찰청에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면.. 2026. 6. 29.
차오위 '뇌우', 90년이 지나도 살아 있는 중국 현대 희곡의 걸작 중국 현대 희곡의 정점, 차오위 《뇌우》한 가족의 파멸을 통해 시대의 모순을 폭로한 걸작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작품을 만나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더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중국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차오위(曹禺)의 《뇌우(雷雨)》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1934년, 스물네 살의 젊은 대학생이었던 차오위가 발표한 이 희곡은 중국 문단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이후 그는 "중국의 입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중국 현대 연극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오늘날 《뇌우》는 중국 현대 희곡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발표된 지 9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꾸준히 읽히고 공연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작품이 다루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 2026. 6. 13.
걸 페미니즘이 던진 불편한 질문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까? 왜 《걸 페미니즘》은 논쟁적인 책이 되었을까?《걸 페미니즘》은 여성 청소년 당사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담은 책입니다. 학교와 가정, 아르바이트 현장, 그리고 성과 젠더 문제까지 청소년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현실을 이야기합니다.이 책이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청소년의 어려움을 다루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특히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은 논쟁을 불러왔기 때문입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 보호를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청소년은 왜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가?"생각보다 간단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걸 페미니즘의 주장: 통제보다 권리가 먼저책 속 필자들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지.. 2026. 6. 10.
착한 사람이 되느라 정작 나를 잃어버린 적 있다면 요즘은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 정말 많습니다.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책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온 제목이 있었습니다.『남에게 좋은 사람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제목만 봐도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되더라고요.늘 남을 먼저 생각하고, 눈치를 보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에세이입니다. 저자 조원희(무채색)는 관계에 지쳐 무기력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책 정보도서명 : 『남에게 좋은 사람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저자 : 조원희(무채색)출판사 : 필름출간 : 2023년 11월장르 : 에세이분량 : 244쪽 한줄평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보다, 나를 지키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 2026. 6. 2.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 인간은 왜 끝내 가짜 희망을 기다리는가 비가 내립니다. 《사탄탱고》를 읽고 가장 오래 남는 건 이야기보다 먼저 그 축축한 감각이었습니다.끝없이 이어지는 진흙길, 무너져가는 건물, 술 냄새가 배어 있는 공기, 그리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지만 결국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탱고》는 흔히 “읽기 어려운 소설”로 이야기됩니다. 실제로 문장은 비정상적으로 길고, 사건은 느리게 흘러가며, 인물들은 끊임없이 같은 자리를 맴돕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읽는 사람을 밀어내기보다 점점 더 깊게 끌어당깁니다.마치 늪처럼요. 20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 작품은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인간이 왜 반복해서 환상과 거짓 희망에 기대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거대한 부조리극.. 2026. 6. 1.
우리는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게 되었나: 《사피엔스》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 도서 정보도서명: 《사피엔스》(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저자: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출판사: 김영사장르: 역사학, 인류학, 인문학초판 출간: 2011년 (국내 출간 2015년)인간은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을까《사피엔스》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닙니다.이 책은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해부하는 거대한 질문에 가깝습니다.왜 하필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왜 인간은 서로 모르는 수백만 명과 협력할 수 있을까.왜 돈과 국가, 종교 같은 보이지 않는 개념을 실제보다 더 강하게 믿게 되었을까.유발 하라리는 약 7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흐름을 세 개의 혁명으로 정리합니다.인지혁명농업혁명과학혁명그리고 이 혁명들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었.. 2026. 5. 31.
『악의 꽃』 -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지금 우리 방구석의 우울이다 1857년에 쓰인 시집인데 이상하게 지금 인스타그램 피드를 끝없이 내리는 우리의 새벽과 닮아 있습니다.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고전이라는 이름보다 현대인의 우울과 권태를 먼저 건드리는 책이었습니다.핵심 정보 요약작품명: 악의 꽃저자: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장르: 프랑스 상징주의 시집국내 판본 기준: 2023년 출간본한줄평: “우울을 치료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하는 시집.”고전 문학이 아니라 ‘현대인의 우울 매뉴얼’솔직히 처음에는 ‘고전 시집’이라는 말 때문에 조금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괜히 어렵고 딱딱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몇 페이지 읽다 보니까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시집은 박물관 유리 안에 들어 있는 문학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감정에 가까웠어.. 2026. 5. 30.
《침묵의 봄》 리뷰|환경책인 줄 알았는데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 다시 읽히는 환경 고전새소리가 사라진 봄의 공포예전부터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봤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읽기 전까지는 조금 지루하고 어려운 환경 서적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단순히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의 기술과 편리함을 믿고 자연을 통제하려 하는지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1960년대의 경고특히 가장 놀라웠던 건 이 책이 1960년대에 나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환경 문제가 일상적으로 언급되던 시대도 아니었고, 당시에는 오히려 화학 기술 발전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던 분위기가 강했잖아요. 그런데 .. 2026. 5. 27.
『죽음의 수용소에서』- 왜 이 책은 평생 한 번은 꼭 읽어야 할까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와 인간다움살면서 어떤 책은 유독 늦게 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누군가는 인생책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내게는 아무 감흥 없이 지나가는 책도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다시 펼쳤을 때 완전히 다른 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제게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예전에도 이 책을 읽으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읽다가 덮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몇 장 넘기지 못한 채 그대로 반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는 아직 이 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2026. 5. 26.
『불편한 편의점』 감상문 — 우리는 왜 결국 누군가의 작은 친절로 버텨내는 걸까 편의점은 늘 비슷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급하게 삼각김밥을 사고,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필요한 것만 사서 금방 나오는 곳. 누군가의 인생을 깊게 들여다볼 공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그런데 『불편한 편의점』은 그 익숙한 공간 안에 사람들의 외로움과 상처, 그리고 아주 작은 온기를 담아냅니다. 읽는 내내 거창하게 감동적이라기보다,조용히 마음을 건드리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늦은 밤 편의점에서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손에 쥔 기분 같은 소설이었습니다.독고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다처음 등장하는 독고는 굉장히 낯선 인물입니다. 서울역 노숙자 출신에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고, 말도 어눌합니다.솔직히 초반에는 저 역시 조금 경계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 2026. 5. 25.
『지상의 양식』 - 왜 어떤 책은 인생의 특정 시기에만 읽히는가 앙드레 지드가 말한 자유, 욕망,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어떤 책은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에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그리고 어떤 책은 줄거리보다 문장으로 기억되기도 하죠. 지상의 양식은 저에게 그런 책이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일반적인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뚜렷한 것도 아니고, 특정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구조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읽다 보면 산문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고, 철학 에세이 같기도 한 느낌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거지?”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이 책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책이라기보다,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마음에 담아가며 읽게 되는 책에 더 가까웠.. 2026. 5. 24.
《아리랑》 다음에 만난 《태백산맥》, 뒤늦게 알게 된 조정래라는 이름의 무게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저는 우연히 아리랑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책대여점에서 눈에 띄어 집어 든 책이었습니다.대하소설이라는 것도 잘 몰랐고, 조정래라는 이름이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묵직한 책 한 권이 이상할 정도로 재미있었고, 결국 겨울방학 동안 10권을 끝까지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고등학교 3학년 첫 학기 봄.저는 다시 책대여점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태백산맥이었습니다.고3 봄, 주말마다 《태백산맥》을 읽던 시간고3이 되면 대부분 문제집과 참고서만 들여다보게 됩니다. 학교와 학원만 반복되고, 주말조차 편하게 쉬기 어려운 시기였죠.그런데 이상하게 그 봄에는 주말마다 《태백산맥》을 읽었습니다. 아마 《아리랑》의 기억이 .. 2026. 5. 23.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솔직 후기 — 왜 열심히 사는데도 자꾸 공허할까 어느 순간부터는 “행복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조금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더 좋은 집, 더 높은 연봉, 더 안정된 미래.분명 예전에는 간절히 원했던 것들인데, 막상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마음은 더 조급해졌습니다. 무언가를 이루면 오래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잠깐 만족했다가 다시 불안해지고, 또 다음 목표를 찾게 됩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바로 그 공허함을 굉장히 정확하게 건드리는 책이었습니다.쇼펜하우어는 냉정한데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솔직히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흔한 철학 교양서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읽다 보면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보통 자기계발서는: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더 도전하라더 성장하라는 방향으로 갑니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정반대 이야기를 합니다. 인생은 원래 고통.. 2026. 5. 22.
고2 겨울방학의 기억: 첫 헌혈, 그리고 책대여점에서 만난 조정래작가의 《아리랑》 살다 보면 이상하게 특정 계절의 공기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습니다.저에게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그렇습니다.유난히 추웠던 겨울, 처음으로 헌혈의 집 문을 열던 긴장감.그리고 책대여점 구석에서 우연히 집어 들었던 한 권의 책.그 겨울은 제게 ‘처음’이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처음으로 헌혈을 했고, 처음으로 거대한 시대를 담아낸 대하소설에 빠져들었습니다.그 책이 바로 아리랑이었습니다.처음 헌혈을 하던 날의 공기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되자 이상하게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지금 생각하면 거창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괜히 어른이 되어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당시 헌혈의 집은 지금처럼 밝고 세련된 느낌보다는 조금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차가운 소독약 냄새, 접수대 위에 놓인.. 2026. 5. 21.
《백년의 고독》 감상문 — 인간은 왜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처음 《백년의 고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솔직히 말하면 “혼란스럽다”였습니다.이름은 계속 반복되고, 누가 아버지고 아들인지 헷갈리고, 갑자기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고, 몇 년 동안 비가 내리고, 죽은 사람이 너무 자연스럽게 다시 등장합니다.읽는 내내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그런데 이상했던 건, 그렇게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도 감정만큼은 너무 현실적이었다는 점입니다.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외로움이 이 소설 안에 있었습니다.환상적인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슬펐다보통 판타지 소설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그런데 《백년의 고독》의 환상은 아름답다기보다 쓸쓸합니다.하늘로 승천하는 여인도, 몇 년 동안 계속되는 비도, 예언서도 모두 몽환적으로 묘사되지만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 2026. 5. 21.
『파한집』 감상문 — 고려 시대 문인의 한숨이 왜 이렇게 지금 이야기 같을까 살면서 고전은 늘 “언젠가는 읽어야 하는 책”의 자리쯤에 있었습니다.중요한 건 알겠는데 쉽게 손은 가지 않는 책들.이인로의 『파한집』도 그중 하나였습니다.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제목만 외웠던 기억은 남아 있었지만, 솔직히 직접 읽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게다가 고려 시대 한문 수필집이라니. 읽기 전에는 왠지 딱딱하고 고루할 것 같았습니다.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예상했던 ‘고전의 거리감’보다 이상할 정도로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책이었습니다.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의 에세이보다 더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한가함을 깨뜨린다”는 제목이 조금 슬프게 느껴졌다처음에는 『파한집』이라는 제목이 꽤 여유롭게 느껴졌습니다.심심할 때 읽는 소소한 이야기 모음집 같았으니까요.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제목의 분위기가 다.. 2026. 5. 20.
『공산당 선언』 감상문 — 30쪽짜리 책이 2026년 회사 이야기가 되는 순간 요즘은 하루 종일 숫자를 봅니다.매출, 성장률, KPI, 전환율, 생산성.사람보다 숫자를 더 오래 들여다보는 날도 많습니다.그래서였을까요.170년 전에 쓰인 얇은 책 한 권이 이상할 정도로 지금 이야기처럼 읽혔습니다.---1. 얇아서 금방 읽을 줄 알았다가, 문장에 오래 붙잡혔다마르크스라고 하면 당연히 어렵고 두꺼운 책부터 떠올렸습니다.그런데 『공산당 선언』은 해설을 빼면 30쪽 남짓입니다.솔직히 처음엔 조금 우습게 봤습니다.“이게 그렇게 유명한 책이라고?” 싶었죠.그런데 첫 문장이 예상부터 깨버립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경제학 책의 문장이 아니라 소설의 첫 문장처럼 느껴졌습니다.읽는 내내 이상한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선언문 같다가도 시 같고, 분석 같다가도 문학처럼 읽혔습니다.분량.. 2026. 5. 19.
스무 살 그 누나가 추천해준 책을 24년 만에 다시 읽었다 ― 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그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게 한 사람이 책을 처음 손에 쥔 게 2000년 어디쯤이었다. 정확한 연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내가 좋아했던 한 누나가 있었고, 그 누나가 "이 책 한번 읽어봐"라며 건네줬다는 사실은 또렷하다. 스무 살의 나는 책의 내용보다 책을 건넨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 있었다. 솔직히 그땐 류시화라는 시인이 누군지도 잘 몰랐고, 인도라는 나라도 그저 멀고 더운 나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누나가 추천한 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책장을 펼쳤다. 그 시절 누가 추천해준 책을 읽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좀 부끄럽다. 책을 책 자체로 만나지 못하고, 한 사람을 통과하는 도구로 삼았던 그 시절의 나. 그래서 사실.. 2026. 5. 16.
『아프니까 청춘이다』 ― 청춘은 정말 아파야만 하는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할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묘한 불쾌감이 책을 처음 폈을 때를 기억한다. 2010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서점 매대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마다, 친구들 손에서마다 이 책이 보였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3백만 부가 팔렸다는 그 책. 다들 위로받았다고 했다. 눈물 흘렸다는 후기가 인터넷에 가득했다. 그래서 나도 읽었다. 그런데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면서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위로받는 게 아니라, 어쩐지 놀림당하는 기분. 한참 읽다가 책을 덮으면서 든 솔직한 생각."이거 사람 놀리는 거 아냐?"청춘은 아파야 한다는 그 전제부터가 이상하다책 제목 자체가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있다. 청춘 = 아픔. 그러니까 너희가 지금 아픈 건 청춘이라서 그런 거고, 당연한 일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2026. 5. 16.
2000년, 스무 살의 내가 만난 책 ― 조창인 『가시고기』 다시 읽기 내가 대학생이 되던 그해, 서점 매대에 깔려 있던 그 책2000년. 내가 대학생이 된 해다. 새천년이라는 단어가 모든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던 시절,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어른인 척하며 서점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던 해였다. 그 무렵 서점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도무지 빠지지 않는 책이 한 권 있었다. 표지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그려져 있던, 조창인 작가의 『가시고기』. 2000년 1월에 발표된 조창인 작가의 네 번째 장편 소설로, 그해 교보문고 연간 판매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야말로 '대박'을 친 책이었다. 학교 동기들도, 자취방 옆 누나도, 시골에 계신 어머니까지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책 한 권을 두고 그렇게 한꺼번에 우는 풍경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 2026. 5. 16.